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김성민 목사 3 6,762 2007.02.05 13:38


본문 : 출애굽기 3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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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2007.02.06 03:08
 
‘경험하다’라는 말은 두 가지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표현하기를 첫째는 외적인의미로서 실제로 보고 듣고 겪는 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식이나 기능, 두 번째는 내적인 의미로서 감각이나 내성을 통하여 얻게 되는 주관적 의식이다.
누군가를 경험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을 만나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이 내 삶과 인격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김치의 대가를 경험했다고 하자.
요즘 젊은 새댁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김치 담글 줄 모른다. 집에서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치를 담글 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다. 김치 담근 법을 배우기 위해 김치의 대가를 찾아간다. 먼저 그분이 하는 것을 본다. 보면서 감탄을 연발한다. 그러나 보는 것 가지고는 진정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없다. 직접 시키는 대로 해봐야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실제로 혼자 담가봐야 한다. 수없이 반복하면서 남편에게 맛을 보이고 칭찬을 받을 때, 그 뿌듯함과 감격을 느끼는 순간 진정으로 경험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인격이 우리의 삶과 인격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맛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 수 있는가?

1.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떨기나무에 불로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사라지지 않자 그 광경을 보려고 다가선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1차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을 보려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다. 3절에 보면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는지라”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보려고”라는 단어 안에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좀 더 의미를 확대하자면 ‘보려고 돌이켜 나아간다’라는 의미는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로 부터 돌이키거나 자기가 하고 있는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간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속적인 가치나 문화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가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단계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 또는 다른 사람들 통해서들었고 교사들을 통해서 배웠던 하나님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사랑이 나의 전 감각과 인격을 통해서 체험되어져야 한다. 요리사가 담근 김치만을맛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직접 그 요리사 못지않게 김치를 담글 줄 알고 남들에게 맛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손바닥과 끝을 통해서 나가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내 인격으로부터 흘러나가야 한다.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가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다.

2. 하나님 앞에서 발에 신을 벗으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 본문이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전제 조건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보려고 돌이켜 왔던 모세에게 말한다. “네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우리의 발에서 신을 벗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을 벗으라는 말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느 곳이든 그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을 벗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김우현 감독이 다큐형식으로 만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영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 영상은 최춘선 할아버지 삶을 다룬다. 지하철을 떠돌며 복음을 전하던 할아버지. 그의 발에는 신발을 신지 않는 맨발이다. 그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빵을 사다가 노숙자와 걸인들에게 나눠주는 등 여러 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리고 서슴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걸인처럼 신발을 벗고 정신지체 자처럼 지하철을 떠도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러한 삶이 가능했다.

한 때는 부모에게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아 집에 자가용을 다섯 대나 소유한 부자였다. 더군다나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였고 목사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김구 주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독립유공자란 사실이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됐다. 물론 동경유학시절 일본의 유명한 목회자였던 우찌무라 간조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가난한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한다. “통일이 되면 신어요”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신을 벗고 다니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최 노인의 고집스런 충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영혼과 육신에 자기를 비워내고 하늘의 본질로 채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닮고자 애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최 할아버지는?2003년 여름 1호선 수원행 열차에서 전도하다 의자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이분의 삶을 통해서 진정으로 신을 벗으라는 의미를 엿볼 수가 있다. 진정으로 신을 벗었을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죄의 신을 벗으라.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반응은 죄의식을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마치 캄캄한 광 속에 문을 활짝 열었을 때 광명한 빛이 확 들어오는 것처럼, 내면에 온갖 죄로 어두워진 영혼이 확 들어나는 것과 같다.
시몬 베드로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날 밤이 맡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에 의지하여 순종하였더니 배에 가득 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는 진정으로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앞에 선 것이다. 그 때 그의 반응은 이렇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5:8)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내면에 감추어진 온갖 추악한 죄로 얼룩진 자기 자신의 심령을보게 된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비춰졌을 때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소리치게 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였다.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자 그는 소리친다.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이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는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통회하며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내면의 울부짖음이 있는가?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 앞에서, 옆에서, 곁에서 계신다.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만 이 곳에 계신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의 모토는 코람데오였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을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를 대하든 하나님 앞에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할 수 있다. 누가 잘 하든 잘 못했든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세워주며, 자신도 다른 지체들을 통해서 약한 부분이 채워지고 도움을 받으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된 공동체인 것이다. 

2. 권한의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권한의 신을 벗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앞으로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울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200만이 넘는 어머 어마한 군중들과 짐승들을 이끌고 가기에는 엄청난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그에 따는 권위를 주시겠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세와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할 뿐이지 결코 백성들 개인에게 군세를 부리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를 찾아와서 사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직분에 따른 권한이 있다. 또한 부모로서 상사로서 형, 누나로서 권한이 있다. 그 권한은 약한 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권위도 주장할 수 없다. 단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향한 권한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나가야한다. 반면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체된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권력을 가지고 주장할 수 없다. 

사도바울의 삶을 통해서도 이 사실은 잘 나타난다.

고전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은 게바와 다른 사도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선교를 할 수 있었다. 병사들이 스스로 돈을 벌지 않아도 봉급이 나오는 것처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처럼 바울은 그가 세웠던 고린도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어떠한 권한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주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위의 힘을 쓰지 않는 것이 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상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열심히 함으로 그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표시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 그 결과로 성적이 오르게 되고 학교에서는 그에게 성적상을 주게 된다. 국가에서 주는 훈장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주어진다. 바울도 당연히 교회로부터 그런 상을 받을 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상이 아니라 권을 쓰지 않는 것이 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들어있다.

종들은 아무리 밭에서 수고하고 돌아왔다 할지라도 상전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먹는 동안에는 수종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한들 그 종에게 사례하거나 상을 주지는 않는다.(눅17:7-10)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다. 우리는 주님의제자요, 종이다. 부득불 복음을 전해야 한다. 바울은 ‘그 엄청난 진리인 복음을 전하는 자로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상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이 공부 잘한다면 당연히 성적상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상이 될 수 있겠는가? 

교회 봉사를 위해 직분을 세우게 된다. 집사, 권사, 장로, 또는 구역장, 위원장, 부장 등. ‘이런 직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큰 상을 나에게 주시다니’ ‘부족한 저에게 이런 직분은 큰 은혜입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직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게 되고, 어떤 직분은 너무나 하고 싶어서 투표까지 할 정도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다. 직분이 맡겨지면 그에 따라 권위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도바울처럼 그 권을 쓰지 않고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상이 될 텐데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권을 쓰기를 즐겨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소위 말하는 완장을 차는 것이다.

*윤흥길씨가 지은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권력의 허무함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생략-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죄악된 습성을 예측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몸소 섬기의 도를 보이셨다. 주와 스승으로서 완장을 차기 보다는 웃통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행여나 제자들이 나중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갈 때 권위에 따른 권력을 사용할까봐 철저하게 낮아져서 그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발을 닦아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권한의 신발을 벗고 완장을 차기 보다는 수건을 둘러야 한다. 직분이 높다고 생각할수록 허리에 동여야할 수건은 많아지고 무릎 꿇어야 할 횟수는 잦아지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 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 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유산계급과 원로원 의원 및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구입토록 했다. 평민들에겐 전비 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또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한 사회의 상층부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 한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리고 예수님의 영이 우리 심령 가운데 충만하여 우리의 중심을 이끌어 간다면 우리의 모든 권한을 벗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포기한 권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신을 벗고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라.

우리가 안방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서 들어간다. 우리의 쉼과 휴식을 위해서는 신을 벗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셨다. 모세에게 주신 약속과 소명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가 지금 서 있는 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안식의 땅으로 이끌러 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히브리서 4:1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9,10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가나안 땅은 안식을 말하고 있다. 이 안식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참다운 안식이 무엇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신을 벗고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일은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끌게 하신 일은 지난 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다. 이제 모세에게 그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모세, 그가 밟고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길 것이며, 이 땅에서 나 여호와는 너희와 만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다.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거룩한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그가 서있는 땅이 거룩한 땅이며 안식의 땅이다. 저와 여러분이 생활하는 삶의 모든 공간과 시간들이 우리에게 주신가나안 땅이며, 결국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들어가게 될 천국의 맛보기이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신을 벗고 살아간다면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안식할 땅 가나안 땅을 복음으로 정복해 나가기를 힘쓴다면 곧 그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관리자 2007.02.06 03:49
  목사님, 텍스트를 올려 주시니 더욱 좋습니다. 샬롬!
정지수 2007.02.11 12:22
  우아... 아멘 입니다... 김목사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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