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박해 1
김성민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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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5 06:57
초기 기독교의 박해를 정리하다가 내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정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렇게 물리적인 박해는 없다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에서 쉽게 무너지고 있지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그렇게 목숨바쳐 일하고 있는지,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통해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덧붙여서 우리가 사는 미국과 한국은 이런 폭력적인 박해를 겪지 않지만 그외 많은 지역에서 지금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 기독교 대박해 이전
a. 티베리우스(14-37)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인 티베리우스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다. 그는 그의 친위대장 세자누스에게 전권을 맡겨 나라를 다스리도록 했는데 세자누스의 후원을 받은 인물이 바로 빌라도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b. 가이우스 칼리굴라(37-41)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의 동생의 손자이다.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성전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c. 클라우디오(41-54)
클라우디오는 칼리굴라의 숙부이다. 그는 로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이 추방명령에 따라 고린도에 이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게 된다.
2. 기독교 1차 대박해
a. 네로(54-78)
교회에 대한 첫 번째 대박해는 로마의 여섯 번째 황제인 네로가 통치하던 시대에 일어났다. 그가 통치하던 주후 64년 네로는 로마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 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유세비우스도 네로의 '극단적인 광기' 때문에 그의 생모와 아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통치권을 확고히 다진 네로가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대적하여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기 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 혹은 화형이 되어, 해진 후 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들의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아니면 마차를 몰고 다녔고 그동안 서커스에스는 쇼가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공중의 선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타기투스의 연대기 중에서)
"우리는 훌륭한 사도들을 면밀히 살펴보시다. 베드로는 한 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의 노력을 통하여 불의를 극복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증거는 영광의 자리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열정과 노력으로 바울은 인내의 상을 받았습니다.....바울은 동서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고귀한 명성을 얻었습니다."(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5장 )
"당신은 이처럼 이 권면에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에 심어 놓은 번영의 씨앗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다."(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의 설교 중에서)
그의 제위 시기인 서기 58~64년은 예수가 죽고, 그의 사도인 바울과 베드로가 한창 포교를 벌일 때였다. 베드로와 바울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에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3. 기독교 2차 박해
a. 도미티안(81-96)
도미티안 황제는 모든 면에서 네로의 전철을 밝았다고 한다. 유세비우스는 네로와 도미티안의 박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는 로마에서 상당히 많은 귀족들과 저명인사들을 부당하게 살해했고.....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대하는 일에 있어 네로의 후계자가 되었고 " 또한 터툴리안도 도미티안이 네로와 " 동일한 일"을 행하려 했으며 " 잔인성에 있어서 실질적인 네로의 후계자였다"고 말한다. 도미티안 자신의 아내였던 도미틸라를 유배시키는 한편, 그의 집정관이었던 자신의 조카 플라비우스 클렌멘스와 그의 두 아들을 살해했다. 그는 또한 다윗의 혈통에 속한 사람들을 모두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박해 기간 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목자인 시몬(Simon)은 십자가형을 받았으며, 요한은 끓는 기름 속에 던져질 뻔하다가 팟모로 추방당했다. 로마 원로원의 원로의 딸인 플라비아는 폰토(본도)로 추방당하였다. 그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법령이 세워졌다. "법정에 일단 출두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앙을 단념하지 않는 한 결코 처형을 피할 수 없다." 그의 통치기간 중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온갖 종류의 날조된 거짓말들이 횡행하였다. 로마지역에 기근이나, 역병, 지진 등이 일어나면 그 발생의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는 것 등의 거짓말들이 많았다.
사도 바울의 제자로 이름 높은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목자로서 A.D. 97년까지 그 교회를 열정적으로 섬겼다. 이 기간 중에 로마제국이 카타고기온이라는 명절을 기념하려 하자 디모데는 그들의 악마적인 우상 숭배를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이로 인해 격분한 사람들이 그를 끌어내어 무자비한 방법으로 구타하였고 그는 구타당한 상처로 인해 이틀 후에 죽음을 맞게 되었다.
4. 기독교 3차 대박해
a. 트라얀(98-117)
이 박해 기간 중에 사랑하는 순교자, 이그나티우스가 고난을 당하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로 유명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베드로의 후임으로 안디옥교회의 목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시인하여 시리아에서 로마로 송환되어 야수들에게 던져져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 나는 제자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에도, 그것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리스도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불에 태우고 십자가형에 처하고, 야수들의 먹이가 되게 하고, 뼈를 부러뜨리고, 손발을 찢고, 몸을 가루로 만들게 하십시오. 모든 마귀의 공격이 내 위에 임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얻기 원합니다!" 그는 짐승들에게 던져지는 형이 선고되었는데 그 형벌은 그가 받기를 고대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의 밀알입니다. 내 몸은 야수들의 이빨과 더불어 흙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순수한 빵을 낼 것입니다."
a. 아드리안(117-138)
트라얀의 왕위를 계승한 아드리안(Adrian)은 전임자에 뒤지지 않는 심한 박해를 가하였다. 이 시기에 로마의 목자였던 알렉산더가 두 명의 집사와 함께 순교를 당하였다. 구리누스와 헤르네스도 가족들과 함께 처형되었으며 로마의 귀족이었던 제논, 이 외의 약 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였다. 아라랏 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고난 때와 같은 방법으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며,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로 순교를 당하였다. 용맹스럽고 유능한 로마인 사령관이었던 유스타키우스는 황제로부터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우상숭배자들의 제사에 참석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그의 믿음은 매우 신실했기 때문에 그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에 격분한 황제는 이 유능한 사령관의 공적을 잊어버린 채 그와 그의 모든 가족들을 처형하였다. 브레시아시민이었던 파우스틴과 요비타 형제의 순교는 특히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었으나 그들의 인내심은 놀라운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을 본 이교도 칼로세리우스는 감탄과 경이함으로 선언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위대하도다!" 이로 인해 그도 체포되었으며 그들과 같은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