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갖는 기대

김동욱 0 4,348 2007.03.08 23:45
아직도 춥기는 하지만, 봄이 가까이 와 있는 것만 같다. 이제 3월이니 봄이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을게다. 먼 곳을 달려 오느라, 오다가 숨이 차면 조금씩 쉬었다 올지라도, 우리네 앞마당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봄이 오니 마음이 설레어 온다. 남자라고 해서 왜 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는가?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새들을 바라보며 밝은 소망을 품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외투를 벗고 싶다.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싶다. 잘못된 관행도 인습도 모두 떨쳐 버리고 싶다. 잘못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봉하고 있었던 입도 열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다.

봄이 봄일 수 있는 것은 소생하는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계절의 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현상에 안주하려는 소극적인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금의 치즈는 머지않아 재고가 바닥이 나거나 곰팡이가 생겨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

봄과 함께 우리의 생활에도 생기가 넘쳐나기를 기대한다.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는 경제 상황이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경기도 다시 살아나서 우리 모두의 이마에서 주름살을 제거해 주기를 소망한다. 오랫동안 변죽만 올리고 있는 ‘불체자 구제법안’도 속히 통과되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기를 갈망한다.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판에도 더 이상은 흙탕물이 흐르지 않는 깨끗한 풍토가 조성되기를 희구한다.

새 봄과 함께 막혔던 통로들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 북한과 미국의 대표들이 뉴욕에서 만나고 있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화들을 나누기를 바란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도,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도 이번의 북미회담은 반드시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회담이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회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민족 모두가 평화를 사랑하고 희구하는 온 인류가 반길 멋진 성과를 이 봄에 이루어 내길 갈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의 한인사회에도 봄기운이 깃들기를 기대해 본다. 반목도 질시도 떠나는 겨울과 함께 모두 흘려 보내자! 불필요한 일들로 서로 비난하고 다투고 흠집을 내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자! 말로만 화합을 외치지 말자! 내가 먼저 마음을 열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 오고가는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라면 목례라도 주고 받자! 서로 외면하지 말자! 내 생각과 다른 사람과도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곳이 세상이다. 이 세상은 나 만을 위하여,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곳이 세상이다. 올 봄에는 모두 가슴을 활짝 펴고 팔을 넓게 벌려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안아 보자!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자! 용납하고 보듬으면서…

* 뉴욕한국일보 2007년 3월 8일(목요일)자 A11면 삶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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