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째 끼니를 굶을 수가 있어요...

이정근 1 6,699 2009.10.22 11:49
뉴욕 사랑방

우째 끼니를 굶을 수가 있어요…
ㆍ작성자: 은선 ㆍ작성일: 2009-10-21 11:14


우째 끼니를 굶을 수가 있어요…

어떤 글에 보니까 카톨릭의 신부들은 교인들의 들고 나는 것에는 별관심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상부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니까 교인이 이리가던 저리가건 그들의 관심 밖이라네요. 승려나 신부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외로움’과의 전쟁도 만만치 않겠으나, 어차피 모두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보니, 내가 하려는 일에 ‘올 인’ 하기에는 어찌보면 가정을 갖지 않기로 한 그들의 선택이 어떤면에서는 훨씬 좋은 상황과 조건을 제공받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직자’로서의 직무수행에 있어 신부나 승려가 목사들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일한다고 봅니다. 공통점이 있는 업무상황에서 그들은 ‘생활’이라는 숙제가 가볍기 때문입니다. 그럴 것도 같습니다. 혼자 몸이면 무엇이 겁나겠어요…쌀 떨어지면 금식하고 잘 곳 없으면 십자가 밑에 엎드리고…

생각해보면 대중들의 성직자들에 대한 기대치가 목사에 대하여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저를 위시하여 우리는, 목사에게 참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떠들지만 말고 성경 속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방법을, 당신들의 생활 속에 적용시켜가며 살면서 보여 봐봐!’하는 우리 기대의 반영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제한된 경제조건에서 ‘생활’이라는 문제가 만만치가 않음을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목사에게 합리적이지 않은 요구를 하는 것은 좀 억울한 면도 없는건 아닐테지만, 기대를 가져 준다는 것은 꼭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하여 사람들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어쩌다가 요즈음의 우리들은 종교에까지 ‘재미’를 요구하게 되었는지…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한번에 수천명씩 회개시켰다는 베드로의 설교도, 전도 짱 바울의 설교도, 그 유명한 요한 웨슬레의 설교도, 읽어보면 하나도 안웃기거든요. 웃기는게 다 뭐예요. 오히려 지루하고 딱딱하고…그런데도 기록에 의하면 사람들은 눈물 콧물 비벼가며 회개를 했다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사람들이 ‘회개’라는 것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따라 부흥회에 참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사람들이 코를 훌쩍거리거나 아예 엉엉 울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던 장면들이 주로 많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부흥회, 어떤 분들이 오시더라도 우리가 회개하도록까지 몰고 가지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중이 너무 웃겨 주기를 갈망하니까 목사들이 부지 중에 타협되는 건지…하지만 저는 우리 영혼을 찔러 쪼개어서 회개시켜 줄 수 있는 부흥사들의 출현이 안타깝게 기다려집니다. ‘회개없이 얻은 값싼 구원’, ‘회개를 모르는 껍데기 뿐인 신앙생활’, ‘회개를 경험못한 그리스도인의 뻔뻔한 생활’…말이 안되거든요. 요즘, 세상으로부터 욕 엄청 먹어서 밥도 필요없는 우리,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잖아요. ‘본질의 맛’을 보지 못한, ‘본질에 대한 고뇌’가 없는 우리들인 것을, 겉치레만 요란뻑적지근한 우리들인 것을, 영악하디 영악한 세상이 모를 리가 있나요. 물론 예수님이 대중들을 깔깔 웃게도 만드셨지만, 그것은 바보같은 표정과 몸짓과 말장난이 아니라 그분의 수준높은 윗트였잖아요. 아마 이 가을, 지금 예수님이 베어마운틴에서 산상수훈을 베푸신다면 글쎄요…사람들이 전부 딴청할 것 같지 않아요? ‘와아!~ 단풍 죽인다!’ 아니면 딴지를 걸던지…

올 한해는 유난히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결혼 25주년 같은 행복한 일들도 있었고 동생의 갑작스런 수술같은 가슴 철렁한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어떤이들에게야 하루 저녁 유흥비 밖에 안되는 액수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턱 막히는 금전문제도 있었습니다. ‘사랑해요’라고 따뜻한 고백을 하는 분들, 바쁜 와중에도 한땀한땀 손으로 만든 핸드백을 국제우편으로 보내 주신 분, 반면에 서운한 마음을 단 한번의 여과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서슴없이 떠벌리고 표현해 버리는 분들…그리고 잠깐이긴 했지만, 제 상관의 거취와 연관된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확실함도 제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감당키 어려운 일들이 제게 닥칠 때 제가 하는 일은 딱 한가지 입니다. 그냥 십자가 밑으로 낑낑거리고 보따리 채 끌고 가는 거지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아무에게도 풀지 않은 그 보따리들을 금식하며 눈물과 콧물을 섞어 아버지한테 하나하나 다 벌려 놓는 겁니다. 저는 어리광이 많은 성격이 아니라 시시콜콜 또랑또랑 아뢰기보다 그냥 잉잉거리며 줄줄 웁니다. 제가 즐겨 쓰는 방법인, 마당에 퍼질고 않아 땡깡부리는 아이처럼 엉엉 울다보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같은 성령님! 정말 열일 제치시고 부리나케 달여오셔 안아주시고 눈물 닦아 주십니다. 아픈 내 마음 달래 주시고, 상처로 아린 내 영혼 싸매어 주십니다. 그 맛에, 어렸을 적 어머니 품 같은 완전한 그 품이 좋아서 자꾸 달려갑니다. 묻지도 않으시고 따지지도 않으시고 꼬옥 끌어안으시고, 그냥 ‘hush, hush…’ 내 머리 쓰다듬어주시는 그거이 좋아서 별일도 아닌 것도 보따리를 풉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또 신기한 건요, ‘해결사 우리 아버지’ 입이 딱 벌어지도록 문제 풀어주시는 겁니다. 속알머리, 주변머리 다 빠질만큰 골머리를 앓아도 풀수 없던 얽히고 설킨 인생의 실타래들이, 울 아버지 손아멘 맡겨지면, 옛날 어머니와 함께 털실 감듯이, 저는 두 손 벌려 오른쪽 왼쪽 돌려 가며 감기만 하면 된다니까요. 그냥 술술 풀어주시네요.

내 힘으로는 도저희 해결불가능한 금전 문제들!
한 성깔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을 인간관계의 문제들!
내 영향력을 벗어나버린, 머리커져 버린 아이들에 관계된 문제들!
모아놓은 돈도 없고 튼튼체도 아닌 나의 노후에 대한 불안한 마음!

물론, 금식으로 하나님을 협박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금식을 하면 더 훌륭해져서 특혈한 자격증이나 특권이 주어진다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습니다. 체질적으로 저야 몸만 조금 아파도 숟가락을 놓는 사람이니 마음과 영혼이 아픈데 밥이 넘어 갈 리가 있나요. 걍 ‘우리 아버지(사64:8)니까 마구 응석부리는 거지요.

저는 금식이, 집중적으로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만 사로잡혀 살 수 있는 ‘하늘나라 생활’의 예행연습인 것 같습니다. 마냥 쫄쫄이 굶는 것이 아니라, 도우시는 성령에 사로잡혀 음식으로부터 자유할 때, 내 영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체험합니다. 사실 먹는다는 것은, 내 힘으로 산다는 것을 자타에 나타내고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던가요!....아닐까요! 금식을 해 보면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존재인지 금방 실감할 수 있거든요. 한끼라도 못챙겨 먹으면 죽을 것 같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배고프지도 기운없지도 않도록 내 텅 빈 위장과 약한 무릎이 안쓰러워 득달같이 달려오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을 쨘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지금 우리 교회에 불고있는 금식기도의 바람이, ‘회개기도’로 연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여러분! 승리하세요.
그리고 나서, 우리도 김연아처럼 화려하게 웃자구요!


뉴욕 코리안 닷넷 (뉴욕사랑방) 에 올려져 있는 글인데
믿음 가운데 공감 하고 싶은 글이라 여겨져 퍼왔습니다.
= 아이디.은선님이 오늘 뉴욕 사랑방에 올린 글 입니다 =


Comments

jinna kim 2009.10.23 02:15
  너무 너무 공감하는 여지가 큰 글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경망스럽고 우수꽝스러운 설교 대상이 아님
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사람들을 웃기며
비위 마추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고 세우시고저하는 그러한 신실한 교회가 되기에
힘쓰는 우리 예수 생명교회를 주께서 친히 인도하시옵소서!!

그래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성령과 말씀의 빛으로 더욱 밝히 빛나는 이 땅의
예루살렘과 시온성이 되어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