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생명과 평안의 힘

한가람 0 6,006 2007.04.28 08:18
기도는 생명과 평안의 힘(로마서 8장 6절)

첫째 글  ㅡㅡㅡ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났던 총격사건은 미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과 아픔이었습니다.
 
1999년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남학생이 총격사건을 저질러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그들을 분노하는 10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한 혐오감과 증오감으로 가득 찬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경험했던 한 고등학생이 쓴 글로도 알려져 있고, 혹은 어떤 목사님의 글로도 알려져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아주 역설적인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성질은 더 급해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더 높아졌지만 상식은 더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지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미워하기는 너무 자주 하고 있다. 
생활비를 버는 법을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삶을 채워 넣는 것은 실패했다. 
달에는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는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우리의 편견을 부수지는 못했다. 
자유는 더 늘어났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평화를 더 많이 이야기하지만 지역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어떻게 보면 풍요의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 같아도 우리의 마음은 더 분주하고, 우리의 생각은 더 작아지고 남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가 어떤 면으로는 외부를 향해서 절제하는 것 같아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할 것 같은 심정을 지닌 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나타낸 글에 이렇게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역설적인 시대,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축복을 받았기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우리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생명운동입니다. 
기도는 자기를 반성하는 운동입니다. 
기도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는 운동입니다. 
기도는 불화와 다툼을 극복하는 사랑의 운동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들을 기도로 극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영혼의 숨쉬기’라고 말합니다.

우리 영혼의 건강과 목숨도 바로 영혼의 숨쉬기인 기도에 달려있습니다.
죽어가는 자가 다시 숨쉬기를 하면 생기가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우리 신앙에 생기와 능력이 생기려면 우리는 다시금 영혼의 숨쉬기 운동인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를 창조하신 분, 우주를 만드신 분, 생명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자유의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고 그분의 모든 능력을 내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숨쉬기는 육체의 짐이 아닙니다.
숨쉬기가 육체의 짐이 되는 순간, 육체는 깊은 질병이 든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짐이 아닙니다.
기도 자체가 우리영혼을 살리고,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부여해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영혼이 썩어가고 질병이 들어 모든 것이 무능하다고 낙담할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의 은총을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을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할 때는 체면과 형식을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때로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나와서 그냥 문제를 토해내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왔어요.”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내 삶 전체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당신의 지혜를 갖고 싶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순간, 내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로 바뀝니다. 
기도하는 순간, 내 걱정이 하나님의 걱정으로 바뀝니다. 
기도하는 순간, 내 근심이 하나님의 근심으로 바뀝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누구와 함께 여행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야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서 떠날 수가 있습니다.
사랑했던 친구도 내 마음을 몰라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친구,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성령님입니다. 
 
기도를 통해 삶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교회의 문제,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역사로 바뀔 것입니다. 

둘째 글 ㅡㅡㅡ


자기 욕심만을 좇아 속히 잡은 사업은 복이 아니라
마침내 화가 되는 것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인내를 그릇삼아 성취의 열매를 맺고
그 인내의 기간을 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엘리에셀의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믿음의 과정을 바르게 거치면서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기꺼이 인내하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 때가 이르기까지
엘리에셀의 하나님에 의해 날로 새롭게 빚어 지게 도와주옵소서.

때로 우리의 삶이
인생의 광야속에서 꽁꽁 얼어붙는 것 처럼 여겨질때
빨래가 얼면서 마르는 것 처럼
우리 인생역시 얼면서 하나님의 도구로 정화되어 감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찾을때에
우리 모두 이 시대를 위한 출애굽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아래는  나희덕 시인의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라는 시입니다.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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