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저에게 참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둘째 형이 전화를 했습니다. 평상시처럼 안부를 묻고는 저의 사역과 교회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그 질문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몇 명이야, 그 중에 어른들은 몇 명이냐. 내 말을 듣고는 비웃듯이 ‘그런 교회가 비전은 있는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든지, 도대체 우리 식구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로 속상함이 가시지가 않고 자꾸 짜증이 났습니다. ‘감사’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데 도무지 내 자신이 감사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겠습니까? 그러다가 문득 성령의 감동이 찾아왔는데, 설교의 시작을 여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을 통해서 설교의 서두를 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짜증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짜증날 이유가 없는데 속상했던 제 자신이 얼마나 속 좁은 놈인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다리의 모양으로 착각하듯이 그렇구나! 하고 웃음한번 크게 웃고 지나가면 좋을 텐데 이런 속 좁은 사람을 목사라고 잘 순종하는 여러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교회가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영적인 안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를 꿈꾸며 아낌없이 헌신하신 여러분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저 없이 교회를 자랑하는 여러분이 전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같은 가족이라도 형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식구가 있는 반면에 부모님 같은 든든한 믿음의 후원자가 있어서 전 늘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아버지에게 상의를 드렸습니다. 처음에 꾸중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그렇게 좋은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사역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되었다고 옮기려고 하느냐? 목회자는 성실해야지, 더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이 곳 저 곳 옮겨다는 사람처럼 간사하면 안 된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곳은 매우 힘든 곳입니다. 교회도 이제 시작한 곳이라 어렵습니다. 이미 기반이 다져진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가질 않을 것입니다. 어려울 때 그곳 목사님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가라.” “네 어머니가 기도 많이 하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믿음의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감사의 제목들이 무척이나 많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감사할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절선물인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추수감사절이 초막절에 해당합니다. 초막절을 히브리어로 ‘수코트’라고 부릅니다. 이 절기는 유대력으로 티쉬레이(7월/태양력으로 9~10월) 15일에서 22일까지 계속됩니다. 이때는 계절이 바뀌어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초막절은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그 때가 추수기이므로 하나님께서 추수의 의미를 포함하여 함께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출 23:16). 이 날은 우리나라 추석명절과 일치합니다. 유대인의 민간달력이 우리의 음력과 같습니다. 단지 다르다면 음력보다 한 달 늦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7월 15일이 우리나라 음력 8월 15일과 같습니다. 그날 치러지는 행사에 있어서도 유사점이 많습니다. 저녁 달빛 아래 성전 뜰에서 횃불 춤을 추고 여인들의 뜰에서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편을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은 흡사 강강술래를 연상하게 합니다.
초막절의 첫 이틀,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예배가 거행되며 전통적인 의식이 행해집니다. 그리고 간단한 예식이 7일 동안 매일 아침마다 가정에서 혹은 회당에서 행해집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로 연결한 종려나무 가지나 여러 나무 가지<에트로그(아름다운 나무실과), 루라브(종려나무), 하다스(은매화), 아라바(버들)>를 들고 왼손에는 이스라엘 소산의 아름다운 과일인 시트론을 들고서 축복서가 낭독되면 그것을 네 방향으로 흔듭니다. 여러 가지 식물들은 인체의 각 부위를 상징합니다. 이것을 흔든다는 것은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 각 가정에서는 초막에 둘러앉아 촛불을 켜고 절기의 음식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눕니다. 제 3일에서 7일까지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며 아버지는 일터에 가지만 명절의 분위기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제8일에는 히브리어로 ‘씸하트 토라’라고 부르는데 ‘토라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이 날은 모세오경의 두루마리를 궤에서 모두 꺼내어 회당 주변을 행진합니다. 이 명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카’라 부르는 초막을 짓고 해방과 자유의 감격을 누리는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굳이 초막을 지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광야에서 초막에 지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초막절이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원조입니다. 이 초막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기억하라!
초막은 대게 천으로 만들고 바닥은 널빤지로 깔았습니다. 지붕에는 여러 가지 나뭇잎과 가지를 얼기설기 얹어놓았습니다. 낯에는 햇빛을 가리고 저녁에는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야영장의 텐트처럼 저녁에 누워 별을 보며 광야의 시절을 상기하며 자녀들에게 그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단다. 그의 권능의 손이 강팍한 바로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단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낼 때, 초막을 짓고 밤에는 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잤는데 여호와께서 불기둥을 세워 그들을 보호하시고 낯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셨다. 또한 하늘에서 만나를 보내 그들의 양식을 삼게 하시고, 그들이 허약하다 싶을 때, 메추라기를 보내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게 하셨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목마를 때 반석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셔서 수백만의 사람들과 가축들을 먹이셨단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품고 사랑으로 훈련시키는 것처럼 여호와는 우리 조상들을 가장 높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비상할 수 있도록 하신일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막절은 여호와께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인도하셨음을 기억하며 지키는 명절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첫 경험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하루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는지 자녀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별도로 집에서 다과를 준비하든지,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따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마련해서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갔습니다.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자녀들에게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초막절 절기의 주인공 되신 우리 주님께서도 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야 말고 추수감사절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에 해야 할 일입니다.
두 번째는 감사하라! 초막절은 무엇보다도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였습니다. 초막의 내부에는 가을에 열리는 여러 과일로 아름답게 장식하며 식탁과 의자 등을 설치해 놓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초막절 행사에 추수 감사가 첨가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여호와께서 직접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물을 공급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 땅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들은 스스로 가나안 땅을 개간하여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그 열매로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들 초막절 절기가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럴수록 더욱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했습니다.
농사지을 땅을 주시고 적절하게 비를 내리시는 우주의 주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초월적인 능력만이 하나님의 영역으로 여기곤 합니다.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고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강물을 내어 마시게 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야에서 그런 능력을 주실 때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베푸셨습니다.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참다운 하나님을 보이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보호자요 주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가나안에 들어간 약속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장소요, 그들 백성들의 공동체가 이방민족과 구별된 거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초월적인 능력을 베풀지 않아도 여호와는 이미 그의 능력의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과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셨고 그들은 그 땅에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세기 1장 28절에 최초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약속하신 말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말씀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요, 아브라함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경작하며 얻은 수확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에 땅에서 얻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된 것이기에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 만큼 살게 되었다고 여기시나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한 순간이라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이 수확이 없어서 곤고합니까? 피땀 흘려 살아가지만 여건이 전혀 나아지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가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 가나안 땅에서 초막을 짓고 살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절망적인 현실을 만나더라도 우리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초막에 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세속적인 축복이 부러우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오히려 그 축복이 저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신 세속의 문화 속에서 잠시 번영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이 땅에서 누리는 세속적인 번영이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과 비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 하신 것처럼 “너는 살았을 때에 너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다. 기억하라 이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부자의 식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다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내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한 마을에 들르셨는데 멀리서 문둥병자 열 명이 “선생님 우리를 긍휼이 여기주십시오”라고 소리치자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명만이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온 자가 이 이방인 외에는 없느냐”하고 그에게 말하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비록 혈통적으로는 이방인이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감사는 구원의 확신과 창조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여기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믿는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구원자 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모든 것을 주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과거가 아닌 지금 시간을 인하여 감사하라 예수께서 내 곁에 계시니 감사하라 상쾌하고 부드러운 봄철을 인하여 감사하라 지금은 잊어버린 눈물을 인하여 감사하라 내 영혼 안에 있는 평안을 인하여 감사하라 기도를 응답하신 이를 인하여 감사하고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신 이를 인하여 감사하라 나를 뚫고 지나간 폭풍을 인하여 감사하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이를 인하여 감사하라 고통을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움을 인하여 감사하라 절망 중에 위로하심을 인하여 감사하라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인하여 감사하라 길가에 피어난 장미를 인하여 감사하라 그 장미들에 가시가 있음을 감사하라 집을 인하여 감사하고 화롯가가 있음을 감사하라 쾌락을 참게 하는 소망을 인하여 감사하라 기쁨을 인하여 감사하고, 슬픔을 인하여 감사하라 당신과 함께 하는 하늘의 평화를 인하여 감사하라 내일의 소망을 인하여 감사하라 모든 것이 영원함을 인하여 감사하라 -J.A 홀트만
세 번째는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스가랴14:16) 이 절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습니다. 7일간 매일 아침마다 헌주식을 행하였습니다. 물과 포도주를 제단에 붓는 의식입니다. 헌주식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므리바의 반석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신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동틀 무렵 음악밴드에 맞춰 기뻐하는 사람들의 행렬과 함께 제사장은 다리가 셋 있는 황금으로 된 물항아리를 들고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갑니다. 황금 그릇에 물을 채운 다음 성전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사장 무리에게 올라갑니다. 물을 길은 제사장은 남쪽의 수문을 지나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갑니다. 제사장이 수문에 이르렀을 때 은나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그리고 제단 왼편에 놓여있는 은 그릇 두 개에 한쪽은 포도주를 다른 한 쪽은 실로암 연못에서 가져온 물을 붓습니다.
이런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은 제사장을 따라 가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버드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음악소리와 함께 엄청난 함성을 지르며 제사장을 따라갑니다. 성전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그리고 다시 성전으로 돌아가면서 그 때 그 때 마다 절정에 순간 예루살렘 시내가 떠나가도록 고함과 환호성을 지릅니다. 명절이 끝나는 날, 큰 날에는 그 수와 함성이 더하였습니다.
이 의식은 성령의 강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행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4장에 보면 여호와의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약속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천하만국이 예수살렘으로 올라와서 여호와 앞에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막은 성전을 뜻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낙성식을 할 때 초막절에 그 행사를 치렀습니다. 성전으로부터 성령이 흘러나와 각 성도와 그 가정의 초막에 흐르고 세계만방에 흘러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사역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것을 감사하며 우리의 물질과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생명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례식을 행하여 자신을 기념하라고 하시면서 그 기념은 바로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번에 첫 새생명축제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에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이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은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새생명을 하나님께 선물로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하나님은 그 새생명도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교회 안에 불고 있는 부흥의 바람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제목들도 미리 우리에게 주시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 새생명을 드리는 최고의 영광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에 행하셨던 은혜를 기억하고 나누십시오. 그리고 감사의 제목들을 종이에 적어보세요. 내년 이맘 때 추수감사절에 그 감사제목들을 펼쳐보시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여러분의 감사의 내용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더 풍성하게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일 또 하나는 전도대상자를 생각하고 작성카드에 적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최고의 선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박선희
2007.11.20 11:03
추수감사절 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귀한 날들이 샤핑 하러 가는 날들로 자꾸만 세속화 되어가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파요. 우리 주믿는 성도들은 이날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날들인데.....
며칠 전에 저에게 참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둘째 형이 전화를 했습니다. 평상시처럼 안부를 묻고는 저의 사역과 교회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그 질문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몇 명이야, 그 중에 어른들은 몇 명이냐. 내 말을 듣고는 비웃듯이 ‘그런 교회가 비전은 있는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얼마나 속상하든지, 도대체 우리 식구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로 속상함이 가시지가 않고 자꾸 짜증이 났습니다. ‘감사’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데 도무지 내 자신이 감사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겠습니까? 그러다가 문득 성령의 감동이 찾아왔는데, 설교의 시작을 여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을 통해서 설교의 서두를 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짜증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짜증날 이유가 없는데 속상했던 제 자신이 얼마나 속 좁은 놈인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다리의 모양으로 착각하듯이 그렇구나! 하고 웃음한번 크게 웃고 지나가면 좋을 텐데 이런 속 좁은 사람을 목사라고 잘 순종하는 여러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교회가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영적인 안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를 꿈꾸며 아낌없이 헌신하신 여러분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저 없이 교회를 자랑하는 여러분이 전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같은 가족이라도 형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식구가 있는 반면에 부모님 같은 든든한 믿음의 후원자가 있어서 전 늘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아버지에게 상의를 드렸습니다. 처음에 꾸중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그렇게 좋은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사역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되었다고 옮기려고 하느냐? 목회자는 성실해야지, 더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이 곳 저 곳 옮겨다는 사람처럼 간사하면 안 된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곳은 매우 힘든 곳입니다. 교회도 이제 시작한 곳이라 어렵습니다. 이미 기반이 다져진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가질 않을 것입니다. 어려울 때 그곳 목사님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가라.” “네 어머니가 기도 많이 하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믿음의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감사의 제목들이 무척이나 많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감사할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절선물인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추수감사절이 초막절에 해당합니다. 초막절을 히브리어로 ‘수코트’라고 부릅니다. 이 절기는 유대력으로 티쉬레이(7월/태양력으로 9~10월) 15일에서 22일까지 계속됩니다. 이때는 계절이 바뀌어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초막절은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그 때가 추수기이므로 하나님께서 추수의 의미를 포함하여 함께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출 23:16). 이 날은 우리나라 추석명절과 일치합니다. 유대인의 민간달력이 우리의 음력과 같습니다. 단지 다르다면 음력보다 한 달 늦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7월 15일이 우리나라 음력 8월 15일과 같습니다. 그날 치러지는 행사에 있어서도 유사점이 많습니다. 저녁 달빛 아래 성전 뜰에서 횃불 춤을 추고 여인들의 뜰에서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시편을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은 흡사 강강술래를 연상하게 합니다.
초막절의 첫 이틀,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예배가 거행되며 전통적인 의식이 행해집니다. 그리고 간단한 예식이 7일 동안 매일 아침마다 가정에서 혹은 회당에서 행해집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로 연결한 종려나무 가지나 여러 나무 가지<에트로그(아름다운 나무실과), 루라브(종려나무), 하다스(은매화), 아라바(버들)>를 들고 왼손에는 이스라엘 소산의 아름다운 과일인 시트론을 들고서 축복서가 낭독되면 그것을 네 방향으로 흔듭니다. 여러 가지 식물들은 인체의 각 부위를 상징합니다. 이것을 흔든다는 것은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 각 가정에서는 초막에 둘러앉아 촛불을 켜고 절기의 음식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눕니다. 제 3일에서 7일까지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며 아버지는 일터에 가지만 명절의 분위기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제8일에는 히브리어로 ‘씸하트 토라’라고 부르는데 ‘토라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이 날은 모세오경의 두루마리를 궤에서 모두 꺼내어 회당 주변을 행진합니다.
이 명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카’라 부르는 초막을 짓고 해방과 자유의 감격을 누리는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굳이 초막을 지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광야에서 초막에 지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초막절이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원조입니다. 이 초막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기억하라!
초막은 대게 천으로 만들고 바닥은 널빤지로 깔았습니다. 지붕에는 여러 가지 나뭇잎과 가지를 얼기설기 얹어놓았습니다. 낯에는 햇빛을 가리고 저녁에는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야영장의 텐트처럼 저녁에 누워 별을 보며 광야의 시절을 상기하며 자녀들에게 그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단다. 그의 권능의 손이 강팍한 바로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단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낼 때, 초막을 짓고 밤에는 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잤는데 여호와께서 불기둥을 세워 그들을 보호하시고 낯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셨다. 또한 하늘에서 만나를 보내 그들의 양식을 삼게 하시고, 그들이 허약하다 싶을 때, 메추라기를 보내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게 하셨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목마를 때 반석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셔서 수백만의 사람들과 가축들을 먹이셨단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품고 사랑으로 훈련시키는 것처럼 여호와는 우리 조상들을 가장 높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비상할 수 있도록 하신일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막절은 여호와께서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인도하셨음을 기억하며 지키는 명절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첫 경험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하루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는지 자녀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별도로 집에서 다과를 준비하든지,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따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마련해서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갔습니다.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자녀들에게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초막절 절기의 주인공 되신 우리 주님께서도 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야 말고 추수감사절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에 해야 할 일입니다.
두 번째는 감사하라!
초막절은 무엇보다도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였습니다. 초막의 내부에는 가을에 열리는 여러 과일로 아름답게 장식하며 식탁과 의자 등을 설치해 놓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초막절 행사에 추수 감사가 첨가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여호와께서 직접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물을 공급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 땅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들은 스스로 가나안 땅을 개간하여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그 열매로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들 초막절 절기가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럴수록 더욱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했습니다.
농사지을 땅을 주시고 적절하게 비를 내리시는 우주의 주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초월적인 능력만이 하나님의 영역으로 여기곤 합니다.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고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강물을 내어 마시게 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야에서 그런 능력을 주실 때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베푸셨습니다.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참다운 하나님을 보이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보호자요 주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가나안에 들어간 약속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장소요, 그들 백성들의 공동체가 이방민족과 구별된 거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초월적인 능력을 베풀지 않아도 여호와는 이미 그의 능력의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과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셨고 그들은 그 땅에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세기 1장 28절에 최초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약속하신 말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말씀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요, 아브라함에게도 약속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경작하며 얻은 수확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에 땅에서 얻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된 것이기에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 만큼 살게 되었다고 여기시나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한 순간이라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이 수확이 없어서 곤고합니까? 피땀 흘려 살아가지만 여건이 전혀 나아지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가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 가나안 땅에서 초막을 짓고 살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절망적인 현실을 만나더라도 우리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초막에 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세속적인 축복이 부러우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오히려 그 축복이 저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신 세속의 문화 속에서 잠시 번영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이 땅에서 누리는 세속적인 번영이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과 비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 하신 것처럼 “너는 살았을 때에 너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다. 기억하라 이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부자의 식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다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내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한 마을에 들르셨는데 멀리서 문둥병자 열 명이 “선생님 우리를 긍휼이 여기주십시오”라고 소리치자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명만이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온 자가 이 이방인 외에는 없느냐”하고 그에게 말하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비록 혈통적으로는 이방인이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감사는 구원의 확신과 창조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여기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믿는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구원자 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모든 것을 주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과거가 아닌 지금 시간을 인하여 감사하라
예수께서 내 곁에 계시니 감사하라
상쾌하고 부드러운 봄철을 인하여 감사하라
지금은 잊어버린 눈물을 인하여 감사하라
내 영혼 안에 있는 평안을 인하여 감사하라
기도를 응답하신 이를 인하여 감사하고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신 이를 인하여 감사하라
나를 뚫고 지나간 폭풍을 인하여 감사하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이를 인하여 감사하라
고통을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움을 인하여 감사하라
절망 중에 위로하심을 인하여 감사하라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인하여 감사하라
길가에 피어난 장미를 인하여 감사하라
그 장미들에 가시가 있음을 감사하라
집을 인하여 감사하고 화롯가가 있음을 감사하라
쾌락을 참게 하는 소망을 인하여 감사하라
기쁨을 인하여 감사하고, 슬픔을 인하여 감사하라
당신과 함께 하는 하늘의 평화를 인하여 감사하라
내일의 소망을 인하여 감사하라
모든 것이 영원함을 인하여 감사하라
-J.A 홀트만
세 번째는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스가랴14:16)
이 절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습니다. 7일간 매일 아침마다 헌주식을 행하였습니다. 물과 포도주를 제단에 붓는 의식입니다. 헌주식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므리바의 반석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신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동틀 무렵 음악밴드에 맞춰 기뻐하는 사람들의 행렬과 함께 제사장은 다리가 셋 있는 황금으로 된 물항아리를 들고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갑니다. 황금 그릇에 물을 채운 다음 성전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사장 무리에게 올라갑니다. 물을 길은 제사장은 남쪽의 수문을 지나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갑니다. 제사장이 수문에 이르렀을 때 은나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그리고 제단 왼편에 놓여있는 은 그릇 두 개에 한쪽은 포도주를 다른 한 쪽은 실로암 연못에서 가져온 물을 붓습니다.
이런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은 제사장을 따라 가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버드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음악소리와 함께 엄청난 함성을 지르며 제사장을 따라갑니다. 성전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그리고 다시 성전으로 돌아가면서 그 때 그 때 마다 절정에 순간 예루살렘 시내가 떠나가도록 고함과 환호성을 지릅니다. 명절이 끝나는 날, 큰 날에는 그 수와 함성이 더하였습니다.
이 의식은 성령의 강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행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4장에 보면 여호와의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라고 약속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천하만국이 예수살렘으로 올라와서 여호와 앞에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막은 성전을 뜻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낙성식을 할 때 초막절에 그 행사를 치렀습니다. 성전으로부터 성령이 흘러나와 각 성도와 그 가정의 초막에 흐르고 세계만방에 흘러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사역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것을 감사하며 우리의 물질과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생명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례식을 행하여 자신을 기념하라고 하시면서 그 기념은 바로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번에 첫 새생명축제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에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이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은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새생명을 하나님께 선물로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하나님은 그 새생명도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교회 안에 불고 있는 부흥의 바람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제목들도 미리 우리에게 주시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 새생명을 드리는 최고의 영광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에 행하셨던 은혜를 기억하고 나누십시오. 그리고 감사의 제목들을 종이에 적어보세요. 내년 이맘 때 추수감사절에 그 감사제목들을 펼쳐보시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여러분의 감사의 내용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더 풍성하게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일 또 하나는 전도대상자를 생각하고 작성카드에 적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최고의 선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