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Beatitudes, Supreme Happiness, 마5:1-12)

이정근 0 6,776 2010.09.10 08:26


정의 ;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다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약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산상수훈을 주셨다. 이를 통해 신약이 구약을 확장 완성시킨 하나님의 구속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 ; 천국 시민권을 가진 성도가 어떤 믿음과 삶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지, 이를 통해 얻는 영적 열매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며 그 핵심은 바로 신약 성도가 인생 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준다.

“복”의 개념 : 행복(Happiness)는 영어의 Happen(발생하다, 일어나다)에서
나온 말.
네잎 크로바의 꽃말은 행운(Lucky), 세잎 크로바의 꽃말은 행복(Happiness)
행운의 네잎 크로바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세잎 크로바를 짓밟고 다님.
성도는 행운을 쫒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행복을 발생시켜야 한다.

1)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가난’이란 히브리어로 ‘에비온(ebiyon)’이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
* 성경에서 말하는‘고아’, ‘과부’, ‘나그네’를 의미,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
* 여기서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를 말한다. Mind가 아니라 ‘Spirit(영)',
*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긴 사람. -> 세상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누리려고 애 쓰는 사람.
야생화가 아름답다고 꺽는 자는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고 꽃을 통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려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2)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펜툰테스(Pethun-tes, 분리, 상실의 슬픔)
* 누가복음: 클라이온테스(Klaiontes, 땅을 치며 울다.)
* 히브리어 ; ‘사파드(Sapad); 애통해 하면서 우는 것을 뜻함.
위의 두 의미를 통합
* 하나님과의 분리-> 지옥의 삶(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으로 가는 자를
보고 땅을 치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 성도(Saint),
*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 천붕(天崩) ->해산의 고통(살전2:8)
* 위로하시는 분 하나님(수동태로 쓰임), 진정한 위로(하나님이 주어)

3)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히브리어 의미: 아납(anab). 온유함 , 겸손함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상대방을 위해 양보할 줄 아는 마음->가장 성숙한 자세->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겟세 마네 기도)->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삶->하나님의 뜻이 네게 이루어지면 무한한 능력 소유할 수 있음-> 능력의 삶
*마7:21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진정한 땅 소유

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 의(Righteousness) : 체데카(Tzedekah), 어떤 기준에 부합하다는 뜻
* 구약시대의 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럼 신약시대가 요구하는 의는?
* 율법의 핵심은 사랑: 십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내용이 빠진 율법이 사람을 판단하는 율법주의로 추락-> 예수님 이를 뒤집으셨다.
* 핵심을 다시 넣어주면 된다. 껍데기인 격식을 파괴하고 의로움의 잣대로
사랑을 주셨다.
* 마 22:27-40: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사랑의 세레나데
* 불란서 혁명의 정신 : 자유, 평등, 박애(넓게 사랑함) 자유와 평등에 사랑이 빠지면 방종이 됨, 그러므로 사랑은 서로 책임져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면 의로운 삶.

5) 긍휼히 영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긍휼히 여기다.-> 자비(엘레오스) 히브리어 :케세드(Chesed) :동정,
측은지심, 공감능력,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이심전심)
* 즐거워하는 자들로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대자대비(大慈大悲) (롬12:15)
*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대박, 사람이 베푸는 자비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는 땅과 하늘 차이->긍휼의 핵심: 남을 심판하지 말라. 용서하라, 주어라.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깨끗함 : 카타로스(Katharos)_.잡티가 없는 순수함을 뜻함,
이 말의 어원은 Katharsis와 같다.
눈물로 씻어내고 회개로 씻어내는 것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보며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사람이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Katharsis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씻어낸 뒤에 오는 깨끗함, 청결함을 맛본 사람만이 아는 행복
과연 현대인들은 이 카타로스를 경험할 수 있는가?
이탈리아의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가 이 물음에 답을 준다.
“당신이 만약 사막에 갈 수 없다면 당신의 생활 가운데 사막을 만들어라.
거기서 묵상과 기도를 하라. 그렇게 영혼의 재건을 위해서 예수님처럼 사막을 찾아라. 이것이 바로 영성생활이다.”

*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여기서 ‘보다’라는 의미는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다. 꿈에서 하나님을 봤다.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봤다는 말은 낮은 수준의 통함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수준은 서로 통하는 ‘텔레파시’의 고차원적인 것이다.

*통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요15:3, 7) 서로에게 순수함으로 대할 때 소통이 이루 어진다. 이것은 안테나의 주파수가 맞는 것이다.(임피던스가 맞았다고 말한다.) 마음이 깨끗 할수록 주님을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의 감도가 좋아진다. 이것이 통함이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 maker)
* 평화: 그리스어로 ‘에이레네(Eirene), 히브리어로 '샬롬’(Shalom), 죄와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세상이 주는 평화 : 은행에 돈이 가득 찼을 때,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 찼을 때, 세상에 골칫거리가 하나도 없을 때 느끼는 편안함

* 주님이 주시는 평화 :이것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느끼는 평화.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안에 안겨 있을 때
느끼는 평화와 같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30)
여기서 쓰인 '안식'이 그리스어로 “에이레네”,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참 평화는 전쟁터에서도, 풍랑 속에서도, 폭풍의 한 복판에서도,
역경의 시험 속에서도 누리는 평화다.
* 누가 이 평화를 누릴 수 있나?
먼저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사람, 내 안의 상처, 내 안의 허물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래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수용하면 자신과 화해가 이루어진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고(마22:39) 자연과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우리는 여기서 핍박받는다는 말로 인해 “순교”를 떠 올리게 된다. 여기서 의롭다는 말의 핵심은 “사랑”을 말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절대 순교를 당할 수 없다. 사랑의 에너지가 폭풍처럼 일어나면 순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순교할 수 있다.

* 이 사랑은 역설적인 것이다. 박해들 받는다는 말을 생각하면 우리는 십자가를 먼저 떠 올린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사랑의 결정체이다. 사랑이 없이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다.
사랑이 없는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보고 미련하다고 했고 지식으로만 본 헬라인들은 어리석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요 미련이 아니라 지혜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본다.(고전1:18)

* 사랑의 힘 :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힘,
시련과 고통, 박해를 이기는 힘은 결국 사랑의 힘이다. (아8:6)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가?
믿음, 소망, 사랑 이 셋 중에 믿음과 소망은 사라진다.
오로지 남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천국이 완성된 후에도 계속 남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늘나라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그가 사랑의 속성인 하늘나라의 아들이 된다.

=뉴욕샘물장로교회 현영갑 목사님=
의 말씀을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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