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기독교인, 말만 기독교인
김동욱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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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1 05:36
“저는 상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들먹이는 사람과는 절대로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말끝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치고, 정직한 사람은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 옛교우의 말이었다.
상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들먹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독교인일 것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비기독교인이 상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찾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마주 앉아 상담을 하고 있으니 대화를 하는 도중에 하나님과 연관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헌데, 상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들먹이는 사람과는 절대로 거래를 하지 않는단다. “자기가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담 중에 하나님을 들먹일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뭔가가 부족하니까 하나님을 끌어들여 같은 기독교인인 저의 마음을 움직여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고 거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담을 할 때는 내가 상대에게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가를 납득시켜야 한다. 나와 거래를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얼마 만큼 유익을 가져다 주는지를 설득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내어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상담에 임하는 바른 자세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상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거래를 성사시키는 관건이다. 상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들먹여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나님은, 상담을 준비하는 과정에, 상담에 임하면서, 상대방이 의식하지 못하도록, 조용히 마음 속으로 부르면 된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한 촉매제로 하나님을 들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홀히 여기는 망령된 짓에 해당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우리 회사에 와서 자기가 거래하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름으로는 우리 회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정보 제공 행위를 통하여 우리의 호감을 사려는 계산을 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그가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완전히 잘못된 계산이다. 그가 우리 회사에 제시했던 조건들 중에서 몇 가지는 상당히 매력적인 것들이었다. 우리가 그와 거래를 시작하면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것들이 제법 있었다. 헌데, 우리는 그와 거래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우리 회사에 와서 다른 회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라면, 다른 회사에 가서는 우리 회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 뻔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거래는 신뢰이다. 신뢰가 동반되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인들끼리 거래를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나님을 들먹이며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거짓과 술수로 상대를 속이고 골탕을 먹인다. 결국 하나님을 협잡꾼으로 만든 것이다. 좋은 일에 하나님을 부르고, 그 좋은 일을 이루도록 도우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기독교인들이,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치고, 남을 속이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을 온갖 추잡한 죄들의 공범으로 만든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기독교인들이 이래서는 안 된다. 자기가 죄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그 죄를 짓는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은 결단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행동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비기독교인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는 말 한 마디가 힘이 되는, 신뢰의 표가 되는, 보증 수표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불신의 이유가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말만 앞세우는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입만 번지르한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뢰 받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많은 비기독교인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이다.
* <크리스찬두데이> 2012년 2월 29일 자 시사 칼럼 "IN & OUT"
그래도 주님을 바라 보며
정직한 영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