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법을 지켜라
김동욱
일반
0
5,382
2006.09.29 00:48
미국에 이민을 와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이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법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일년에도 몇 번씩, 그것도 때에 따라서는 수 백만 명을 무더기로 ‘특별사면’을 해대는 나라에서 살아 왔던 탓인지, 우리는 사면에 대한 기대를 너무 쉽게 한다. 미국에 입국한 후, 체류 시한을 넘긴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서류미비자라고 불리우는 동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의 법감정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알 수 있게 된다. 불법체류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뽀족한 대안이 없는 그들이 사면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사면이야말로 유일하게 걸어볼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면이 금새 이루어질 것이라는 조급한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 미국은 사면에 관한 한 참으로 엄격한 나라이다. 사면 뿐만 아니라, 모든 법의 집행에 철두철미한 나라이다.
운전면허시험에 “안전벨트를 꼭 매야 하는 이유?”를 묻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이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에 매라고 되어 있으니까”였다. 운전자가 운전 중에 안전벨트를 매어야 하는 이유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이 운전 중에는 안전벨트를 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법에 대한 의식을 극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류미비자들에 대한 운전면허발급이 중단되고나서 많은 한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일 수 밖에 없는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들을 위조하거나 변조하기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서류를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천 만에 달하는 서류미비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면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그 법은 ‘체류기간을 넘겨 거주해 온 이민법 위반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서류미비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문서 등을 위조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 법은 불법체류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지, 문서위조범이나 여타 형사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미국에서 살아갈 요량이라면, 생각의 방향을 미국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적당히 얼렁뚱땅해서 넘어가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이 정도의 거짓말이야 괜찮겠지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바빠 죽겠는데 언제 줄을 서서 기다려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냥 지나가지 뭐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손해를 보는 일은 없는 곳이 미국이라는 생각, 그것이 나의 15년 동안의 미국 생활이 가져다 준 교훈이다.
* 김동욱 <포트워싱톤>
* 뉴욕한국일보 2006년 9월 28일(목요일)자 A11면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