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씨, 학자로 남게 해야
김동욱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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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0 05:22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일 년 앞으로 다가 왔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일찌감치 달음질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고, 이제 출발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를 향한 경주에 참가하고 있거나 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에는 ‘저 사람이라면 괜찮지!’하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도 있고, ‘저 사람도 대통령이 되겠다고?’하는 냉소적인 평판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속을 지키는게 좋을텐데…’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들먹거려지는 가운데, 유독 나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정운찬씨이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그가 조금씩 말을 바꾸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좋을텐데…’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한국의 정치판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끌어내어 버려 놓는’일을 자주 해 왔다. 고명한 학자를 대학에 가만히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고, 훌륭한 언론인을 신문사나 방송국에 그대로 있게 하지 않았다. 신뢰받는 법조인을 법원이나 검찰에서 정년이 될 때까지 일하도록 가만두질 않았었다.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던 김상협 전 고대 총장을 정치판에 끌어 들였었고, 봉두완씨를 비롯한 많은 언론인들을 정치판으로 끌어 들였었다. 대쪽이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평판을 들었던 사람도 정치판으로 끌어 들였었다. 간혹 그들 중에는 정치판에서도 성공을 한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정물 만을 뒤집어 쓴 채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은 그래도 다행한 축에 속하는 경우이다. 그들이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정치판에서도 더 이상은 설 땅이 없어 무위도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속해 있던 분야에서는 뚜렷한 역할을 했었던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 와서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어 있거나 ‘없어도 무방한 존재’들이 되어 있다. 그들 자신에게도, 국가적으로도 대단한 손실임에 분명하다.
정운찬씨가 계속해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학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그를 이대로 있게 해 주는 것이 어떨까? 정치판에 뛰어들어 성공을 하게 될런지 아니면 쓰디쓴 고배를 들게 될런지, 그것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학자는 학자로 있을 때, 언론인은 언론인으로 있을 때, 군인은 군인으로 있을 때,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존경을 받을 수도 있는 법이다. 세계 제일의 피아니스트라고 해서 바이얼린도 세계에서 가장 잘 켜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극히 드문 경우이다. 피아니스트에게는 피아노를 연주하도록, 바이얼니스트에게는 바이얼린을 연주하게 해야 한다.
* 뉴욕한국일보 2007년 1월 4일자(A-10면) 발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