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넘어 현답과 명답을 찾자!
김동욱
일반
4
8,042
2011.10.05 03:15
10월의 첫날이었다. 조정칠 목사님을 모시고 “조정칠 목사의 성경 이야기”를 녹화하기 위하여, 예정된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내가 운전을 하고, 목사님께서는 늘 그러셨던 것처럼 내 옆 자리에 앉아 계셨다. 통상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뵙는데, 이번의 경우에는 달랐다. 한 달이 넘도록 뵙지 못했었다.
자동차를 운전해 가면서 아멘넷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한 것과 아멘넷의 논설위원 직에서 사임하기로 한 것에 관하여 설명을 드렸다. 이메일로 알려 드렸었지만, 좀 더 자세히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집사님은 정답 시대를 사셨습니다. 이제는 현답 시대, 명답 시대를 사셔야 합니다.” 묵묵히 듣고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목사님께서는 말씀을 이어 가셨다. “이 시대에는 정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뉴욕의 교계에는 어느 누구도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답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는지,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는지 내가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집사님이 정답을 말해 주었습니다. 집사님이 아멘넷을 통하여서, 또 다른 여러 매체를 통하여서 정답을 말해 왔습니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에, 목사님께서는 말씀을 이어 가셨다.
“집사님! 이제 정답을 넘어 현답을 말할 때가 왔습니다. 명답을 말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현답과 명답을 찾으셔야 합니다.”
어젯밤 조금은 늦은 시간에 목사님을 찾아 뵈었다. “산 밑에 백합”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다음에, 목사님께서는 현답과 명답에 관한 말씀을 더 들려 주셨다. “집사님! 정답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반드시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답은 모가 나 있습니다. 정답에는 모서리가 있습니다.” “목사님! 알고 있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양분되어 있는 것을…” “정답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답은 각이 져 있기 때문에, 정답은 모가 나 있기 때문에 서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끝으로 가면 추락해 버립니다. 하지만, 현답과 명답은 각이 져 있지 않습니다. 모서리가 없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모두가 수긍하는, 모두가 수용하는 답이 됩니다. 집사님께서는 이제 그런 답을 찾아서, 그런 답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집사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집사님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과연 그런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헌데… 살아 온 과거를 돌아보니, 이것 저것 제법 해 놓은 일이 보인다. 그것들 중에는 내가 ‘처음’ 한 것들이 제법 많았다. 내가 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여 하신 일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처음’이라는 자리에 자주 세워 주셨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이루어 낼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시면, 아무리 큰 일이라도 감당치 못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또 사용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서 또 나를 들어 써 주시기를 기도하자! 현답을 찾는 일에, 명답을 찾는 일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현명하고도 협력하여 아름다운 "주안에서의 선함" 을 세워 나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깊이 묵상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기도의 끈으로 세워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아닐런지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기도 합니다.
샬롬!!!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달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답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니, 다른 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