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단다!

김동욱 2 4,589 2007.11.04 23:42
잠시 전, 뉴욕 시간으로 주일 오전 9시 35분 쯤, 서울에 계신 아버님께서 전화를 해오셨다. "어떻게 지내냐?" "잘 지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금... 큰어머니가 돌아셨다고 연락이 왔다." 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하신 큰어머님...

2002년 12월에 큰어머님을 생각하며 썼던 글을 이 곳에 옮겨 놓는다.

제목 : 백모님전 상서

큰어머니 !

날이 많이 추워졌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그동안도 평안하신지요 ?
백부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
어디 편챦으신데는 없으신지요 ?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컴퓨터를 켜 놓고 오늘은 무슨 내용의 글을 쓸까 생각 하는 중에 백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제가 전화를 드리면,

“동욱아 !

그래 !

아가 !

잘 지내냐 ?

아픈데는 없고 ?”

라고 하시며 40 중반을 넘어선 조카를 향해 지금도 “아가”라고 불러 주시는 백모님 !

그러기에 저도 백모님을 부를 때면 백모님 또는 큰어머님이라는 호칭 대신에 큰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형제들이 칠남매나 되는 저희 집에 큰며느님으로 시집 오셔서, 시집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되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시누이와 시동생들 하나 하나 짝 지워 분가시켜 가시며 어렵고도 힘들게 살아 오신 큰 어머니 !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셔서 온갖 수모 다 당하시며 큰 소리 한번 못 내시고 살아 오신 큰 어머니 !

몇년 후에 결혼한 시동생(필자의 부친)이 아들(필자)을 낳자 “너무나도 속이 상하신 나머지” 한동안 식음까지도 전폐하셨다던 큰 어머니 !

어느 날부터인가, 식사를 시작하시면서 큰 조카(필자)를 등에 업어 키우시는 재미로 세상을 살아 오셨던 큰 어머니 !

미국에 이민을 온 후로 전화를 드릴 때 마다,

“동욱아 !

아가 !

보고 싶어 !

언제 한번 올래 ?”

를 연발하시는 큰어머니 !

큰어머니 !

이 아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눈에 눈물이 고여 옵니다.

미국에 이민을 온 후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한번도 눈물을 보였던 적이 없었는데, 이 아침 큰어머니를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힘들게 추스리고 있습니다.

큰어머니 !

많이 뵙고 싶습니다.

어리광도 부리고 싶습니다.

큰어머니에겐 지금도 큰어머니 등에 업혀 있던 나이어린 조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기력이 쇠하셔서 저를 다시 등에 업어 주실 수는 없으셔도 큰어머니 가슴에 안아 주실 수는 있으시쟎아요 ?

큰어머니 !

제가 돈에는 별로 욕심이 없는데, 이 아침 이 글을 쓰면서는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큰어머님 모시고 이곳 저곳 다니며 구경도 시켜 드리고, 큰어머니께서 저를 등에 업어 키우시던 때의 이야기도 다시 들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언젠가 제가 고향엘 갔을 때 큰어머니 앞에서 “J에게”를 가사 한자 틀리지 않고 불러 댔던 3살박이 혜련이가 어느 덧 대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큰어머니 !

큰어머니의 등에, 그 따스했던 등에 다시 한번 업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큰어머니의 등에 기대어 편안히 잠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큰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네를 일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큰어머니 !

그 옛날, 저에게 주셨던 그 따스했던 사랑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주후 2002년 12월 13일 아침

뉴욕에서 큰조카 드림

Comments

박선희 2007.11.05 12:36
  무슨 말로 집사님의 아픈 맘을 위로해 드릴수가 있을런지요. 하지만 저도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제가 어렸을적에 길러주셨던 기억이 있어 조금은 집사님을 이해 할수가 있을것 같읍니다.
jinna kim 2007.11.07 15:50
  아루 푶현할수없는 슬픔으로
아주 많이 힘드신
김동욱 집사님께  주님의
따스한 위로가 있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