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큰 딸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가 이번 감사절에 남자친구와 그 엄마와 여동생을 초대해서 자기 부모와 함께 감사절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터키를 굽는 미국식 감사절 상차림을 하고 싶단다. 밤 9시에 남자친구와 함께 와서 입으로 맛있게 요리를 했다. 그 딸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24년을 자랐지만 한번도 집에서 터키를 먹어 본 적이 없단다. 그래서 혹시…하는 마음으로 감사절 상차림을 정리해 보았다.
오븐
스토브만 죽어라고 곰국 끓이고 찌게 끓이고, 오븐은 냄비와 후라이판 창고로나 쓰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들에게 오븐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마치 007이 새로운 작전 맡은 것 만큼이나 비장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어렵게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너무 간단하다. 생각해보라. 19더하기 7를 열손가락 한참 접었다 폈다 하는 여자들도 다 집에 가서 오븐으로 음식을 해서 먹는데 한국여인처럼 똘똘한 여인들이 그까짓 오븐사용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온도를 표시하는 숫자만 잘 화살표에 맞춰 놓으면 저절로 터키가 이리저리 앗! 뜨거! 뜨거! 돌아누우며 노릇노릇 맛있게 익어 준다.
터키
‘터키가 나라 이름이여 새 이름이여’ 하고 헷갈리는 우리 한국 주부들은, 사실 터키 굽는 것이 약간 겁난다. 어떤 엄마들은 ‘나는 힘들어서 못해’라고 핑계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만 자라면 엄마가 할 줄 몰라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아 차린다. 미국에 뿌리 내리고 살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 보자. 터키 정도는 a piece of cake (식은죽 먹기)으로 구울 수 있는 엄마! ‘짱’ 엄마다. 실제로 아이들은 돌아다니며 엄마 흉 진짜 많이 본다. ‘우리 엄마요…아무것도 못해요…우리 엄마요…디게 무식해요…’ 우리가 죽어 관 속에서 미소 띤 얼굴로 우아하게 누웠다가 벌떡 일어날 소리를 아이들이 동네방네 하고 다닐 틈을 글쎄 왜 보이냐구요...진짜 무식해서 아예 포기한 인생이면 또 몰라…잘난척은 혼자 다 하고 다니면서…터키를 구우면서 ‘엄마가 한국에서 살 때는 추석에 송편을 … ‘ 이런저런 얘기를 하하 호호 나누며 추억나무를 심으며 행복 정원을 가꾸자.
터키는 선사시대에 잡은 frozen과 방금 잡은 fresh가 있는데 어느 것을 사든지 최소한 2~3일 전에는 사러 가야지 내가 원하는 터키를 고를 수 있다. 당일 아침에 사러갔다가 정말 한마리도 없어서 못사고 ‘햄’만으로 때우는 주부도 보았다.
1 적어도 2~3일 전에 터키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둔다.
2 감사절 아침에 터키를 잘 헹군다.
(소금물에 담궈라 레몬 물에 담궈라 말들이 많지만 간단히 그냥 구워도 맛있다)
3 포장지에 나온 크기에 따른 조리 시간을 잘 보고 계산해서 오븐을 켠다.
(여자와 오븐은 닮은데가 있단다. 오븐은 금방 덥혀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온도가 되려면 한 20~30분 걸린다.)
4 그동안 스터핑을 만들면 된다. 이 스터핑은 개인마다 민족적 배경에 따라 다 다르다.
우리 된장찌개처럼 가정마다 고유의 전통이 있다. 어느 한 사람의 스터핑을 설명듣 고 온 미국 전체가 그렇게 한고 침을 튀기며 빡빡 우길 필요가 없다. 또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빵부스러기를 넣은 스터핑은 잘 먹지도 않는다.
요즈음에는 오렌지 사과 레몬 같은 과일을 넣어서 터키의 향만 좋게 만드는 citrus 스터핑,
아예 한국 가정들은 삼계탕처럼 찹쌀을 넣기도 하고 오곡밥을 넣기도 하고 찹쌀로 속을 채운 영계를 넣는 주부도 있다. 완전히 주부마음이다. 나는 영계만 빼놓고는 이것저것 다 해 보았는데 매콤한 김치볶음밥이 나왔을 때의 환호는 지금도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그도 저도 싫으면 그냥 터키만 구워도 된다.
5 준비한 스터핑을 속에 넣고 터키를 따라온 잠금핀으로 다리를 잘 고정한다.
끈으로 된 것은 묶으면 된다.
6 roaster바닥에 샐러리와 양파와 마늘을 두겹 정도 깔고 rack 에 터키를 올려 놓는다.
7 터키에 버터나 식용유를 골고루 펴바른다. 나는 손쉽게 그냥 오븐에 넣었다가 한 30분 후에 꺼내서 버터 스틱을 이러저리 비빈다. 그러면 따뜻해진 터키가 버터를 그냥 녹인다.
8 이제는 오븐이 325도가 되었다. 포장지에 적힌 온도로 맞추어 놓고 터키를 집어 넣자. 그리고 용기의 1/3 정도로 물을 부어 주자. 물과 샐러리와 양파와 뱃속의 마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쥬시하고 향그러운 터키로 만들어준다. 이때 호일로 덮으면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므로 그냥 둬서 터키가 혼자 돌아눕게 놔두자.
9 크기에 따라 3~7,8 시간이 걸리지만 처음에는 저온에서 굽다가 마지막 1시간 정도 놔두고 온도를 올리면 껍데기가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구워진다. 한 30분 정도 마다 바닥에 떨어지 국물로 끼얹으라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안해도 된다.
10 다 익으면 커키 몸에 박혀있던 센서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고맙고 편리한 세상.
11 터키는 상 위에 오르기 전까지 오븐 속에서 푹 쉬게 하자.
햄
햄은 대채용이다. 터키를 싫어하던지 모자라던지.
1 슬라이스로 자른 햄에 치즈 같은 것을 말아서 먹을 수도 있고
2 파인애플 혹은 maple syrup 같은 것을 넣고 오븐에 뎁혀도 된다. 우리 집은 터키를 굽기 전에 약 두시간 뎁힌 spiral ham 을 터키를 꺼낸 뒤 maple syrup과 계피를 섞어 온 몸에 발라 400도 정도에 한 10분 넣어서 반짝반짝 윤나게 만들어 얌냠 먹는다.
펌킨 파이 & 애플파이
파이 껍데기는 정말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만두피처럼 경험으로 맛을 내는 것이다. 나는 파이 껍데기를 맛있게 할 능력은 없고 그렇다고 파는 껍데기도 별맛이 없어서 아예 파이채로 사서 예쁜 내 접시에 옮겨만 놓는다. 호호.
얌, 미국 고구마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얌을 보고 너무 반가와서 조금 뻥을 섞어 한가마니를 샀다. 아예 두고두고 먹으려고…그런데 웬 걸…이게 뭔 맛이데요…마침 우리 집에 함께 살던 미키와 미니에게 다 먹였다. 한국 고구마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사절에 빠지면 섭섭하다.
1 삶아서 버터와 흑설탕, 소금 넣고 으깨어서 머쉬맬로우를 얹어 다시 오븐에 넣어서 녹을 때까지 기다려 먹거나.
2 대충 썰어서 흑설탕과 버터, 소금을 넣고 졸여서 먹어도 맛있다.
크렌베리 쏘스
1 수퍼마켓에서 깡통을 사서 썰어놓아도 되고 휘저어 놓아도 되고
2 열정이 있으면 싱싱한 크렌베리 사다가 설탕과 물넣고 졸이다가 입맛에 맞추어 계피나 오렌지 껍데기, 바닐라 향 같은 것을 넣어 만들어도 된다.
그레이비
제대로 된 그레이비는 밀가루를 버터에 볶다가 터키를 구우면서 나오는 국물에 바닥에 깔았던 내장들을 갈아서 만드는 것이지만 비위가 약한 나는 내장이 싫어서 그 국물에 그레이비 가루를 사다가 휘젓는다. 큰 컵 같은 그릇에 담으면 기름을 걷기가 수월하다.
으깬감자
1 감자를 까서 물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푸-욱 삶는다
2 물을 빼고 약간의 설탕, 버터, 헤비 크림이나 우유, 마요네즈 등을 기호에 따라 넣고 잘 으깬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마늘 가루와 양파 가루를 섞는데 쉬~잇! 이것은 제가 대대손손 물려 줄 우리 집 만의 비밀이예요. 여기에 그레이비를 끼얹으면 아! 정말 왜 이렇게 맛있는거야~!!!
옥수수
1 약간의 버터와 소금, 설탕을 넣고 뎁혀서 먹거나
2 필그림들의 추억대로 통체로 먹을 수도 있다. 버터를 발라가며
3 아니면 내 마음대로
옥수수빵
내 옥수수빵의 비밀은 코스코에서 파는 옥수수빵 믹스이다. 나는 이 믹스보다 더 맛있는 옥수수빵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나는 인스탄트 식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것저것 조리법대로도 많이 구워봤지만 코스코 믹스가 제일 맛있어서 옥수수빵만은 그냥 믹스를 사용한다.
마카로니앤 치즈
인스탄트 마카로니엔 치즈는 별 맛이 없지만 세가지 치즈를 녹여서 양파가루와 마늘가루를 넣어서 삶은 엘보우 파스타에 버무리면 별미이자 일미다. 정말 꼴깍꼴깍 그냥 넘어간다.
(혹시 섭섭하면)
송편
송편은 우리 음식이지만 추석을 못지킨 가정이나 송편을 좋아하는 가정은 곁들여도 무리가 없다. 아이들도 예쁜 송편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상기시켜 준다.
조리법은 정말 다양하다. 위의 것이 마음에 안들면 요리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뒤져서 내 기호에 맞는 것으로 고르면 된다. 즐거운 감사절 되십시오.
* "은선" 님께서
www.nykorean.net 에 올려 주신 글입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감사절 상차림을 보고 정말 감사 했습니다.
자상하고도 따듯한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느껴져서 더 좋았습니다.
요리 전문가의 단아한 솜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사절의 풍요로움을 가까이서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 감사드립니다.
코람데오!!!
하시겠습니다...어째든 모처럼만에 몸 보신 잘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좀 맛나게 차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