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신앙 있을 때 회개·영적부흥
한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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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9 19:53
순교신앙 있을 때 회개·영적부흥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신앙
“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의 제단에 제물이 되어지이다.” 주기철, 1940년
주기철 목사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주기철 목사(1897~1944)의 순교신앙이 한국교회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신디제이콥스 한국성회에서는 주기철 목사의 아들인 주광조 장로의 간증시간이 있었다. 제이콥스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주기철 목사의 유족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해서 이루어진 자리였다. 제이콥스 목사는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인해 부흥했다”면서 “주기철 목사의 순교신앙을 이어받을 때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뿌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선 4월 17일, 예장통합 평양노회(노회장 권영복 목사)는 경기도 남양주 동화고교에서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결의와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관련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평양노회의 참회예배’를 드리고 주기철 목사를 복권했다. 1939년 12월 19일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노회에서 목사직 파면처분을 받은 지 67년 만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회개운동이었다. 한국교회가 제2의 부흥을 이뤄내려면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각성과 함께, 회개의 뿌리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1938년으로 소급해 올라간다. 신사참배에 끝까지 저항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의 죄로부터 한국교회의 신앙을 지킨 믿음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 주도한 산정현교회
일제시대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주기철 목사는 1936년 7월 산정현교회에 부임한다. 산정현교회는 1년 뒤 5층 규모의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짓고 성도수가 1천을 헤아리던 교회였다.
조만식을 비롯, 훗날 초대국회 부의장이 된 김동원 등 민족운동가들이 장로로 있었다. 평양노회에서는 1939년 12월 주 목사를 산정현교회 담임목사직에서 파면한다. 1940년 3월 24일 부활주일에는 저항하는 성도들을 내쫓고 문에 못을 밖아 교회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2주 뒤 주 목사의 가족들도 목사관에서 나오게 된다. “당신은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결단코 살아서는 이 붉은 문 밖을 나올 수 없습니다”라고 주 목사가 타협하지 않도록 도왔던 오정모 사모의 신앙은 잘 알려져 있다.
일사각오로 신앙지켜
평양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있던 주 목사는 1938년 2월 첫 번째로 구속당한 이래 1944년까지 4차례의 옥고를 치른다.
일본 경찰은 주 목사에게 “당신은 신사참배를 하지 말고, 남에게 그것이 죄라고 선동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회유하였지만 주 목사는 끝까지 성도들에게 “신사참배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범죄요,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라고 가르쳤다.
주 목사는 마지막으로 투옥되기 전 산정현교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교한다.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이 수욕을 내가 피하여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내 평안과 내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내가 준 그 고난의 잔을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져야 할 이 십자가, 주님이 주신 이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주님이 이 다음에 ‘너는 내가 준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가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오직 나에게는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입니다.”
◇1944년 4월 25일 열린 주기철 목사의 장례식
일본경찰은 신사참배문제에 대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갖은 고문을 가했다. 당시 고문 장면을 목격한 주광조 장로는 형사들이 주 목사에게 고춧가루 탄 물을 먹인 뒤 배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짓누르는 광경을 증언했다. 주 목사의 입과 코와 귀에서 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1944년 4월 21일, 3년 7개월의 투옥생활 중 고문과 병고에 시달리던 주기철 목사는 평양형무소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주 목사 순교로 한국교회 명맥 유지
장신대 민경배 총장은 그의 저서 ‘근대인물한국사 주기철’(1992, 동아일보사)에서 “이날 한국교회 역사의 숱한 수치와 굴욕과 오욕을 다 감당할 영예와 도덕적 순결, 그리고 신앙의 위대한 동력이 움솟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교회의 정통사는 주기철 목사를 거점으로 뻗고 있다”는 것이다.
‘신사참배결의’라는 오점을 남긴 한국교회사에서 주기철 목사의 순교가 있었기에 신앙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김정은 기자 hy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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